본문 바로가기

남산의 부장들, 김부장과 권력의 상징들

김청선 2023. 10. 24.

영화 남산의 부장들

남산의 부장들, 주인공 김 부장

이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에 있었던 박통 대통령 암살 사건과 그 이전 40일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김규평 부장, 박용각 전 부장, 곽상천 경호실장이 중심이 되어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중 이병헌이 연기하고 있는 김 부장, 김규평 중앙정보부장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는 영화에서 신념과 인내로 상징되는 인물입니다. 본인이 박 대통령과 함께 혁명을 시작한 사람이며, 그 박 대통령을 이끌고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신념과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이상으로 모든 상황을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국에서 박 부장이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회고록 작성을 하자 직접 가서 회수하고, 청와대 도청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직접 미 대사관을 찾아가 따지고 설득합니다. 부마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부산까지 직접 찾아가 현장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행동은 국가로 상징되는 박 대통령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고, 나라에는 국격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국격을 갖춘 나라가 되지 않으면 뒤에 있는 미국이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박 대통령 앞에서 신임을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할 말을 합니다. 이 영화는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웃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무겁게 참고 견디는 김 부장의 모습을 연기합니다. 그는 대사가 적기에 말이 아닌 얼굴 표정 하나와 손짓 하나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이병헌은 그 부분을 정말 부족함 없이 보여줍니다. 그 감정 하나하나가 쌓여서 마지막에 그 감정이 폭발하며, 박 대통령을 암살할 때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쉽게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관객 모두가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이지만, 이 영화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들과 함께 쌓아온 인내의 시간들로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을 마음 졸이며 보게 되는 장면으로 바꿔주었습니다.

권력의 상징 대통령과 측근들

이성민 배우가 연기하는 박통 대통령으로 나오는 인물은 우리가 모두 아는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는 의미는 그의 목소리나 생김새가 이미지화되어 우리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성민 배우는 사실 그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만, 연기력만으로 그 대통령의 느낌을 분명하게 전해 줍니다. 이성민이라는 훌륭한 배우가 새로운 박 대통령을 만들어낸 것처럼 느끼게 해 줍니다. 영화에서의 박 대통령은 매우 평면적인 인물입니다. 김 부장을 포함한 다른 인물들처럼 여러 갈등이나 고민을 할 필요 없이 이미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를 어떤 대의나 고민 없이 단순히 권력과 돈을 좇기만 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혁명을 시작했던 박 부장도 삼성 개헌 이후에 내치고 가장 앞서서 일했던 김 부장에게 박 부장 암살을 지시한 후, 친구를 죽인 놈이라며 내치려 합니다. 그것도 분명한 지시의 메시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메시지로 말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충직한 김 부장의 모습과 대비되며, 마지막 순간에 김 부장의 행동에 당위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곽동원 배우가 연기한 박 부장은 김 부장의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 역시 박 대통령 옆에서 이인자로서 충실히 앞장서서 일을 처리하였지만, 끝내 내쳐지고, 마지막에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박 부장의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본 김 부장은 자신도 곧 그렇게 될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게 됩니다. 박 부장이 그런 비참한 죽음이 있었기에, 마지막에 김 부장의 그런 선택이 강요되게 되는 것입니다. 박 부장은 이 영화에서 쫓기는 신세로 계속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안해하는 인물입니다. 그 와중에도 미국의 의중을 읽어 큰 그림을 그려보려 하지만, 순간순간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과 울분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박동원 배우가 너무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이희준이 연기한 곽 실장은 매우 단순하지만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자신보다 강한 권력 앞에서는 충성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그런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이희준은 그것을 매우 충실하게 표현해 줍니다. 그의 체중을 불려서 만든 덩치와 건방진 말투 덕분에 관객들은 상대 배역인 김 부장이 느낄 인간적 모멸감에 더욱 공감을 하게 됩니다. 가끔씩 너무 과장된 몸짓과 말투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곽 실장이라면 박 대통령 앞에서 잘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납득이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병헌과 곽도원은 기존의 자신의 캐릭터에 색깔만 바꾼 반면에, 이희준은 기존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되며,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만 새로운 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그려낸 이성민 배우와 비교되며, 전형적인 인물을 그대로 열심히 연기하고 있다는 수준에서 멈춘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감독, 그리고 혁명의 한계점

암살 사건이 벌어지기 전, 그 4일을 긴박하게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점, 논란이 될 수 있는 예민한 부분들을 우민호 감독은 정면 돌파하며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사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처음에 모두 드러납니다. 박 부장이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하는 증언입니다. 냄새나는 권력의 끝에 박 대통령이 있고, 그가 한국 민주주의를 비극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박 부장의 입을 통해 감독은 그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긴 영화 시간 내내 그 이유를 설명하는 형식. 박 대통령은 권력과 돈을 좇았던 독재자였고, 자리를 내려올 생각이 없었으며, 이미 미국으로부터 버려져 김 부장이 아니었으면 1년 내에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 부장이 큰 결단을 내리지 않았으면 부마 사태 이후 이어진 계엄령으로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중간에 박 대통령이 김 부장과 술을 마시다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그의 정성까지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박 대통령 암살 후 전 장군이 금고에서 돈과 금괴를 빼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 장군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전작인 마약왕에서 도대체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지적을 받고 이번 영화에서는 메시지 전달에 확실히 힘을 크게 준 느낌입니다. 그 김 부장이 영화 내내 내세우는 혁명의 의미가 영화 내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합니다. 전체 내용상으로 보면 같이 혁명의 뜻을 세우고 시작한 김 부장과 박 대통령의 관계에서 박 대통령은 혁명의 뜻을 저버리고 본인의 욕심만을 채우게 되고 그 혁명의 뜻을 끝까지 마음속 가지고 있던 김 부장이 혁명의 배신자라며 박 대통령을 암살하는 내용인데 영화 끝까지 그 혁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더구나 미국에서 김 부장과 박 부장이 공원에서 만나서 하는 대화 중에는 너는 왜 혁명했냐라는 물음에 서로 네가 하자고 하지 않았냐고 묻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처럼 김 부장은 처음에 왜 혁명을 시작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김 부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혁명이라는 의미에 대해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는 부분은 참 아쉽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중간에 스토리가 늘어지면서 좀 지루해지는 부분이나, 방금 말씀드린 설정상의 아쉬움은 있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근현대사지만 사실 다들 정확히는 모르는 내용이기에 이 영화를 기회로 모두 관심을 갖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