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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타임, 시간여행과 질서의 존재

김청선 2023. 10. 25.

영화 어바웃 타임

어바웃 타임, 과거로의 시간여행

주인공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하루를 두 번씩 살아보라는 행복의 비밀 공식을 알려줍니다. 팀은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힘들었던 날도 두 번씩 반복하게 됩니다. 처음엔 힘든 일을 겪으면서 괴로워하고 지겨우면서도 무료하게 살아가지만 두 번째로 보내는 하루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소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팀은 시간 여행에서 마지막 교훈을 얻었다고, 그리고 아빠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말합니다. 그건 바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매일매일을 자신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하루를 지내려 노력하겠다고 말합니다. 왜 팀은 시간 여행을 통해 이런 교훈을 얻게 된 것일까 살펴봅시다. 시간 여행 능력을 가진 팀 그가 과거로 돌아가면 사건은 반복됩니다. 하지만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메리와의 첫 만남이 그렇습니다. 서로를 볼 수 없는 암흑 속의 식당, 케이트 모스에 대한 전시회장, 그리고 조애나의 파티에서처럼 메리를 처음 만나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느낌조차 반복에 따른 차이가 생깁니다. 메리와의 첫 만남 외에도 샬록과의 재회, 결혼식의 주례 등 다양한 사건들은 모두 반복을 할 때마다 차이를 가져옵니다. 즉, 반복은 차이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봄이 오면 봄이 또 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작년의 봄과 올해의 봄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질서의 존재를 지키고 살아라

한 장소에서 해마다 벚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작년에 피었던 벚꽃이 올해도 핀다고 말하지만 사실 작년의 벚꽃과 올해의 벚꽃은 완전 다른 벚꽃입니다. 3.1절, 광복절, 석가탄신일 그리고 크리스마스까지 매년 기념일을 보내더라도 1919년에 3월 1일, 1945년에 8월 15일, 그리고 싯다르타가 태어나고 예수가 태어나던 그때와는 다른 날입니다. 반복되는 것들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축제에는 바로 그런 역설, 즉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것을 반복한다는 명백한 역설이 놓여 있다. 또한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반복은 일반성이 아니다. 일반성은 두 가지 커다란 질서를 거느린다. 그것은 유사성들이라는 질적 질서와 등가성들이라는 양적 질서이다. 순환 주기와 동등성. 여기서 들뢰즈 철학의 심오한 깊이를 파헤치는 건 주제와도 벗어나거니와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을 통해 우리의 삶이 반복 속에서 차이를 가지고 존재를 확보할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인생은 차이와 반복을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든 카페를 가든, 영화를 보러 가든 매번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은 없습니다. 늘 차이를 수반하게 됩니다. 팀 역시 시간 여행을 하며 깨달은 교훈이 바로 이런 거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해서 지금 여기에 되돌아와도 분명 무언가 차이가 있다는 거 그리고 사실 살아간다는 게 그런 차이와 반복을 마주한다는 거 그런 게 바로 인생이라고 그러니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가지 말고 매일매일 사랑하고 현재를 긍정하며 살아가자고. 영화의 제목이 어바웃 러브가 아니라 어바웃 타임인 까닭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메리의 옷에 대한 해석

그래서 개인적으로 메리가 드레스를 받고 있는 씬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의상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영화 초반 로맨스 코미디 분위기와는 다른 후반부에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 삽입된 장면이고, 앞서 얘기했던 관점으로 미루었을 때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드레스를 갈아입을 때마다 갈등을 느끼는 매리와 대조적으로 팀은 모든 드레스에 똑같이 좋다고만 반응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했던 차이, 그리고 반복 앞에 아직은 무딘 주인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까지 주인공은 시간 여행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드레스를 대하는 태도가 곧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묘사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메리가 처음에 입고 싫어했던 바로 그 드레스를 마지막에 다시 입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차이와 반복을 긍정하는 일종의 곡선 그리고 감독의 코멘트를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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