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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 불균형적인 캐릭터와 연출

김청선 2023. 10. 24.

영화 국가부도의 날

국가부도의 날, IMF 사태의 오류

국가 부도의 날은 1997 년 imf 사태를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다루고 있고, 최근 사회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이게 문제가 좀 많습니다. 위약적인 윗사람들에 대한 분노에서 감정적인 호소로 이어지는 구조로 할 말은 다 하는 영화지만, 당시 imf 협상을 차갑게 분석하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영화 초반, 국가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경제수석이 대통령에게 못 알아듣게 얘기하겠다고 얼버무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가 당시 상황을 구겨 넣듯 대사로 처리하고는 뒤에 가서 관객들에게 깨어 있는 의식을 종용하는 태도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이 영화가 결말에 가서 현실을 바라보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보면 그다지 그럴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불균형적인 캐릭터의 구성

우선 이 영화는 김혜수가 맡은 한시연, 유아인이 맡은 윤정합, 허준호가 맡은 갑수 이렇게 크게 3개의 독립적인 시선으로 진행되는 옴니버스식 구성입니다. 그럼 이렇게 한 사건에 연루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다룬다는 건 영화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나가겠다는 취지일 텐데, 영화를 다 보면 아시겠지만 캐릭터들의 비중이 불균형적입니다. 그러니까 비중이 한시원 쪽으로 너무 치우쳐져 있어서 결말에 영화가 대놓고 메시지를 전달해도 잘 와닿지가 않습니다. 한시원에게 비중이 쏠림의 문제가 첫 번째, 국가 부도의 위기감이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한시원이 등장하는 장소는 일단 한국은행이 베이스고,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라든가, imf 총재와 협상하는 자리라든가 굉장히 넓고 좋은 곳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깨알같이 기자회견도 되게 좋은 곳에서 진행합니다. 근데 한시원이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인데, 이미 관객과의 거래를 다툰 상황에서 장소마저 도와주지 않으니까 이 위기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허준호가 맡은 갑수라는 인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겁니다. 당시 국가 부도 때문에 성실히 일하던 사람들이 실업으로 내몰리고, 나아가 삶의 의지까지 꺾였습니다. 이 문제점을 영화적으로 재현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로 적합했던 인물이 바로 갑수였는데, 이 사람의 비중이 워낙 적어서 당시 상황을 잘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연출과 내용의 설정들의 아쉬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영화는 당시 imf 사태를 반추하고 현실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더더욱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힘을 실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배우들은 짧은 순간에도 뛰어난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던 문제들, 그러니까 한계마저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는 연출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한편 윤정학은 국가가 부도날 걸 예상하고 풋옵션 등을 거래해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행동이 국가 경제나 시민들에게 미치는 악영향,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이 기회주의자로 설정된 그가 끝에 가서 어쩌면 정당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위험이 있습니다. 상황도 그에게 잘 따라줍니다. 눈앞에 거슬리는 놈은 주먹으로 몇 대 갈겨주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니까 이렇게 편한 캐릭터가 또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 영화의 긍정적인 평을 보면 imf 사태에 대해 알기 좋았다는 의견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이 영화 제작비가 70 억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위학적인 인물들로 분노를 자극합니다. 재정국 차관은 늘 눈을 옅게 뜨고 창문을 등진 채 역광으로 비춰줍니다. 그래야 얼굴에 음영이 드리우고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영화도 시스템을 겨냥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결말에 가서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며 관객을 가르치려고 드는데, 이미 영화 속에서 의식만큼은 깨어 있던 한시원은 결국 좌절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 년 전 빅쇼트가 개봉했을 때 이동진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의 영화들은 시스템을 비판하는 이야기에서조차 그것을 결국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합니다. 관객은 그런 악한 캐릭터들을 보면서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마음껏 분노를 터뜨리다가 손쉽게 카타르시스를 얻고서 극장을 나선 후에 말끔하게 잊기 쉽다"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에서 나온 재정국 차관이 잘린다고 가정합시다. 그 자리에 a가 가던, b가 가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팽창하는 자아를 시스템이 견제하지 못한다면 계속 썩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앞으로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한국 영화가 제발 감정적 호소는 접어두고 차가운 칼끝을 시스템에 겨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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