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사랑의 성장과 태도의 관점
봄날은 간다 , 리뷰를 시작하며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상우입니다 그는 업무 차 라디오 pd 은수를 만납니다.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는 상우는 은수와 함께 소리를 녹음하러 다닙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너무 빨리 사랑에 빠집니다. 서로 좋은 감정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갑작스레 연애의 국면을 마주한 그들의 사이는 사랑과 갈등을 오가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연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살펴봅시다. 영화 봄날은 간다입니다.
사랑의 태도의 감정들
이 영화는 사랑을 격정적으로 표현하지도 않고 괜한 허영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일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며 한 번쯤 꿈꾸는 사랑의 판타지를 과감히 배제하고 그 실체를 말하려는 작품입니다. 말하자면 정서를 간지럽히는 로맨스가 아닌 마치 주삿바늘을 꼽고 시간이 지나면 그 정서가 온몸에 퍼지도록 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라면 먹을래요라는 대사입니다. 실제로 둘의 사랑은 라면으로 시작하고 둘은 식사에서 항상 라면을 먹습니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라면에 비유되어 해석되곤 합니다. 지나고 돌아보면 상우와 은수의 관계도 라면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뜨겁게 시작하지만 금방 소진되고 쉽게 만들어지지만 인스턴트로 남는 라면처럼 말입니다. 둘의 관계를 라면이란 관점으로 해석했을 때 둘의 사랑이 시작하기 전에 장면이 흥미롭습니다. 밥그릇에 가득 넘치는 밥은 확실히 라면과 대조를 이루는데, 상우는 이 밥상을 먹성 좋게 받아들이고 은수는 부담되는 표정을 드러내며 당황스러워하는데, 이 밥상을 대하는 둘의 태도가 바로 각자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즉, 상우는 넘치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고 은수는 거기서 한 발 뒤로 물러서려는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 사랑을 하다 보면 그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그 사랑이 갑자기 너무 크게 느껴져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다른 차이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은수는 한 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람이고 상우는 결혼 경험이 없는 남자입니다. 은수는 강릉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고 상우는 서울에서 부모님, 고모, 할머니와 함께 살아갑니다. 또, 상우는 직장 동료, 택시를 모는 절친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은수는 연애 상대 외엔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사소한 차이도 있는 겁니다. 이러한 그들의 차이 역시 단순한 설정에 그치지 않고 사랑에까지 투영됩니다. 은수가 주도적입니다. 상우를 달래는 방법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상우가 찾아갈 때와 은수가 찾아갈 때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비교하자면 은수는 상우보다 좀 더 방법론에 능합니다. 사랑 그 너머의 사실적인 부분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상우는 점점 상대방에게 기울여 은수에게 맞추고자 하지만 그럴수록 은수는 자기 자신이 되려 합니다. 집을 지을 때 지붕의 양쪽이 서로 똑같이 기울이지 않으면 중심이 무너지듯 그들의 관계 역시 불안정하게 틈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성장
어쩌면 그 틈은 그들의 역할이 암시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소리를 모으지만 소리를 소비하는 사람은 pd 혼자인 것처럼 함께 사랑을 하지만 결국 소비하는 것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둘의 관계는 은수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또, 상우에게 유일하게 종속되었던 자동차에서 벗어나 자신의 차를 마련함으로써 끝나려 합니다. 결정적으로 상우에게 또 하나의 사랑이었던 할머니가 죽고 상우 또한 이제 확실해집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날 회사에서 서류 작업 중 손이 베이자 무심코 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은수인데, 이건 다름 아닌 상우가 알려줬던 방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은수는 또다시 상우를 찾아갑니다. 할머니 갖다 드리라며 화분을 건네는 은수. 상우는 이제 은수를 거절할 수 있게 됩니다. 그녀는 상우 할머니의 죽음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낭만을 꿈꾸는 벚꽃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집니다. 이 영화는 상우의 성장 영화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우가 우리의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며 뜨겁게 추진하고 마음이 앞서지만 그 권태에 매몰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랑 자체에 문제 있기보다 사람이 고여 있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상대방에게만 맞추다 보면 가짜 감정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자신의 감정은 어딘가 진실되지 못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랑은 스스로가 근사해지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이것은 서로를 멀리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외적인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사랑을 소비하는 대신 사랑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 제목에서 봄은 시인, 김영랑의 시구, 찬란한 슬픔의 봄과 같은, 슬프지만 미래를 보는 봄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우 역시 그런 마음을 깨달았기에 마지막에 웃을 수 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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